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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bok_2025
Interhuman_하만석

나의 사진작업은 거울을 보는 행위와 비슷한데 빛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또 다른 자아를 만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나는 강한 정체성에서 에너지를 느낀다. 나는 그것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비추어보곤 하는데 심지어 생물이 아닌 것에 조차 시도하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한 민족의 집약된 정체성마저 뚫고 나오는 개성을 가지고, 심지어 조화롭게 서있는 그들은 도저히 놓아줄 수 없는 대상이었다. 정체성이란 자기 내부의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정체성에서 에너지를 느끼고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한 의욕이다. 순간순간 내가 존재함을 확인함으로써 당위성을 합리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나는 플래시를 터뜨려 대상을 밝히는 식으로 내면의 에너지를 느낀다. 마치 연극 무대의 암전. 어둠 속에 순간의 빛을 쏘고, 충돌되어 나오는 빛을 통해 에너지를 감지하는 방식이다. 경복궁은 암전 된 연극 무대가 되고, 한복을 입은 대상들은 조명을 받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대상과 나의 내면이 맞닿으며 생기는 강력한 순간의 충돌 에너지는 나를 더 깊은 몰입으로 이끈다. 

플래시를 통해 빛을 터뜨리는 행위는 나에게 특별하다. 그 빛은 ‘나’로서 나아가 대상과 접촉하기 때문이다. 나는 빛을 타고 날아가 대상과 접촉한다. 빛은 충돌되는 표면마다 다르게 변형된다. 일부는 경복궁 기와에 부딪쳐 차분하게 머물고, 일부는 한복 옷깃에 스며들어 은은하게 빛나며, 일부는 그들의 눈동자로 들어가 그들 내면을 훑고 튕겨져 나온다. 나는 그렇게 되돌아온 ‘나’를 카메라 센서로 포착하는 것이다. 플래시라는 상징적인 붓으로 대상에 대한 시각적 표현을 형상화한 것이다. 플래시로 사진을 찍는 것은 자아와 타자의 구분을 넘나드는 행위이고 정체성에서 나오는 강력한 에너지에 대한 답을 구하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포착한 이미지들을 모자이크로 모아보면 정체성의 다양한 측면을 채우고 있는 ‘나’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고, 내 안의 모아둔 수많은 ‘타자들(the others)’의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2023년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을 찍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경복궁과 한복은 한국의 정체성을 가장 강력하게 상징하는 장소이고 의복이다. 그 당시 외국인들의 모습에서 느껴진 시각적 충격은 운명 같은 흥분이었다. 이질적인 에너지들이 만나 충돌하면서 새로운 에너지가 생성되었고 나는 그 강한 개성에 중력처럼 이끌렸다. 나는 그때부터 같은 장소에서 2년 동안 사진 작업을 이어나갔다. 충돌하며 발생하는 에너지를 사진 매체로 포착하여 종이에 밀착시키고 싶었다.

내 사진들을 보며 자신의 정체성 조각들을 상상하고 탐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 연이 닿는다면 사진 속에서 자신과 닮은 조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 의도와는 다른 해석들이 많기를 바란다. 각자의 경험, 감수성, 지식에 따라 또 다른 무궁한 체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작업이 다양한 시각들로 이해되어 생명이 깃들 듯 사진이 스스로 살아 나아가길 바란다.
데이비드 앨런 하비_멘토

하만석은 온화한 영혼을 지닌 예술가이다. 그는 예술적 사명을 수행하면서도 자신의 주변 세계를 깊이 인식하는 인물이다. 
역사적 흐름 속에서 탄생한 동시대 문화를 포착하는 그의 예리한 시각적 감각은, 낯선 이를 촬영하기에 앞서 반드시 동의를 구하는 그의 윤리적태도를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그 결과, 전통 한복을 입은 국제적인 인물들의 초상 사진이 탄생했다. 그의 초상 사진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개방적이고 환대의 시선을 지닌다. 찰나의 순간, 우리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이 담긴 개성을 마주한다. 먼 이국에서 온 인물이 한국의역사와 문화를 받아들이는 모습, 그리고 이를 하만석의 공감 어린 시선이 담아낸 방식 속에서 우리는 보다 깊이있는 서사를 발견하게 된다. 

이 작업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국제적 모델을 통해 조명되는 한국의 역사이며, 매일 새롭게 펼쳐지는 하나의 ‘패션쇼’와도 같다. 그렇다면 이는 초상 사진인가, 다큐멘터리인가? 사실, 두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 더욱 확장된 차원의기록이라 할 수 있다.

마치 화가가 캔버스 위에서 붓을 휘두르듯, 하만석은 스트로브 플래시를 하나의 회화적 도구로 활용하여, 수개월간의 촬영을 단 한순간으로 응축해낸다. 그의 사진은 마치 모든 이미지가 같은 날 촬영된 듯한 시각적 연속성을지니며,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하만석의 멘토로서 그의 여정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나의 역할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방식대로 창작할 수 있도록 예술적 자유와 공간을 제공하는 데 있었다. 예술가란 결국 자기 자신을 찾고,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며,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투영하는 존재이다.

혼란과 변동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질서를 창조하는 것. 깊이 사유하고 탐구하며, 마침내 자신의 시선을 한 권의책 속에 구현하는 것. 그리고 그 책이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작품으로 존재하는 것. 한복(Hanbok)은 하만석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시각적 서사이자 예술적 헌사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는 더 많은이야기를 펼쳐나갈 것이다.
사진 짓는 사람_전우용 역사학자 

한국어에서 ‘짓다’라는 동사는 특별하다. 이 동사와 결합할 수 있는 명사는 표정, 웃음, 눈물, 한숨 등 심리상태를 즉각 표현하는 것들과 글, 시(詩) 등 이성과 감성을 다듬어 표현하는 것들이다. 농사, 밥, 옷, 집도 ‘짓는다’고 한다. 한국어 ‘짓다’는 영어 make, build, construct 등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이들 중 어느 단어도 그 뉘앙스에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다. ‘짓다’는 ‘마음으로 만들다’, 또는 ‘정성을 다해 만들다’라는 뜻이다. 사진작가 하만석은 19세기 한국인들이 지은 최고의 건축물인 경복궁에서, 역시 한국인들이 지은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정성껏 담았다. 그에게는 사진도 ‘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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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6일, 서울에 있던 소련 여성 파냐 이사약고브나 샤브쉬나는 그날의 광경을 “대부분이 하얀 명절옷을 입고 있어 끝없는 흰바다가 흔들리며 들끓는 것 같았다.”라고 묘사했다. 그가 보기에 ‘하얀옷’은 한국인의 ‘집단 정체성’이었다. 인류가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한 이래, 이 물건은 늘 ‘개성’이 아니라 ‘집체성’을 표현했다. 어느 지역에서나 이른바 ‘민족의상’의 기본 디자인은 같았으며, 신분에 따라 소재와 색깔에 차이를 두는 정도였다. 같은 신분에 속하는 사람들은 같은 형태의 옷을 입었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바느질 솜씨와 세탁 횟수 정도였다. 옷에 ‘개성’이 담기기 시작한 것은 민족들 사이의 교류가 본격화하고 개인들이 공동체에서 해방된 이후의 일이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을 계기로 유럽인 주도의 대항해시대가 열렸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급속히 늘어났고, 지구 전역에서 문화간 접촉이 본격화했다. 견(絹), 면(綿), 마(麻), 모(毛)의 4대 섬유 문화권도 통합되기 시작했다. 의복 양식의 통합은 유럽에서 먼저 일어났다. 유럽인들이 교역과 교류의 주도권을 쥐었기에, 유럽적 의복 양식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모방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한국인들은 19세기 말부터 유럽의 의복 양식을 ‘양복(洋服)’이라고 불렀다. 유럽과 미국에서 전래한 것들에 ‘양(洋)’을 접두어로 붙이던 조어법의 소산이었다. 한국인들에게 ‘양’은 ‘신(新)’이자 문명이었다. 처음 양복을 입은 한국인은 1881년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간 서광범이었다. 1895년, 조선 국왕은 단발령을 내렸다. 모든 남성에게 상투를 자르고 서양식 단발(斷髮)을 하라는 명령이었다. 국왕이 먼저 단발을 하고 양복을 입었다. 단발령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철회되었으나, 일단 머리모양을 양식으로 바꾼 사람들은 의복과 신발도 양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일본옷인 ‘화복(和服)’과 청나라 옷인 ‘호복(胡服)’을 입고 다니는 외국인도 많아졌다. 한국인들은 각자의 형편과 취향에 따라 여러 문화권을 표상하는 옷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채택했다. 남성의 경우 갓, 망건,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 짚신으로 구성된 옷을 갖춰 입는 것은 ‘시대에 뒤쳐진 행위’로 취급되었다. 전래의 옷과 양복을 섞어 입는 ‘문화 절충형’ 인간이 늘어났다. 여성의 옷에도 변화가 생겼다. 치마 길이가 짧아졌고 저고리 깃이 높아졌으며, 옷 색깔도 다양해졌다. 물론 유럽과 미국 문화에 동화하려는 열망에 불타던 신여성(新女性)들은 ‘양장(洋裝)’을 차려 입었다. 변화 과정에 있던 한국인들의 옷은 다른 문화권 옷들과 접촉, 교류하는 과정에서 ‘조선옷’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식민지 상황에서 옷에 담겼던 보편적이고 절대적이었던 집단 정체성이 특수화, 상대화한 결과였다.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에게 ‘조선식’이라는 말은 낙후의 표상이었다. ‘조선옷’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인들 스스로 ‘조선옷’을 천대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주민들에게 ‘전시 생활복’을 입으라고 강요했다. 남성은 군복과 비슷한 ‘국민복’을, 여성은 일본식 작업복인 ‘몸뻬’를 입어야 했다. 이 지시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비(非) 국민’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군이 대패한 이후 흰색 조선옷을 입고 거리에 나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미군 비행기의 폭격에 대비한 방공(防空) 훈련이 거듭되던 때였다. 미군은 일본인들만 공격할 것이라고 믿은 한국인들은 ‘흰색 조선옷’으로 자기 정체성이 일본인과 다르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물론 일본 경찰은 이런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그들은 흰옷에 검은 물감을 뿌려 ‘조선인의 정체성’을 지웠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패망했고 조선인들은 ‘해방’되었다. 조선인들이 ‘흰 명절옷’을 입고 거리에 나선 것은 자기 정체성의 해방을 선언하는 행위였다. 샤브쉬나가 본 것은 바로 ‘해방된 정체성의 파도’였다.

해방 이후 남북이 분단되고 남쪽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에 따라 ‘조선옷’이라는 이름도 ‘한복(韓服)’으로 바뀌었다. 이름만이 아니라 옷의 정체성도 바뀌었다. 나일론 등 합성섬유가 흔해지고 염색산업이 발달하면서 한복의 소재와 색채 모두가 달라졌다. 그보다도 한복 입는 사람이 급속히 줄어들었다. 교복과 군복이 모두 ‘양식’을 채택한 것도 옷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수성을 바꿨다. 1960년대부터 한복은 결혼식 날이나 명절에만 입는 예복처럼 되었다. 예복인만큼 소재, 색채, 디자인이 모두 고급화했다. 1960년대 이후의 한복은 그 이전의 한복과는 사실상 다른 옷이었다. 

하만석이 무대로 삼은 경복궁도 마찬가지다. 1395년 조선왕조의 법궁(法宮)으로 창건된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이 궁궐은 1867년에야 재건되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1915년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라는 이름의 박람회를 열면서 그 안의 전각 대부분을 헐어버렸다. 1926년에는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양식 건물’과 ‘조선식 건물’ 사이의 대비를 연출했다. 조선총독부는 문명, 선진, 일본을 상징하는 건물이었고, 경복궁은 야만, 후진, 조선을 상징하는 건물군이었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해방 40주년인 1995년에야 헐렸고, 그 때부터 경복궁이 ‘복원’되기 시작했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의 월대(月臺)는 2023년에야 복원되었다. 하지만 복원된 경복궁은 전통 경관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관의 구성 요소가 됐다. 하늘에서 산으로, 산에서 다시 궁궐로 하강하는 경관의 수직적 위계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현재의 경복궁 주변에는 양식 고층건물들이 즐비하다. 오늘날의 경복궁은 ‘양식(洋式)’에 둘러싸인 채 그들과 어울리려 애쓰는 ‘고립된 전통’의 표상이다. 

10여 년 전부터 서울 북촌과 전주 한옥마을 등 ‘고립된 전통’을 표상하는 장소들에 한복 대여업체들이 생겨났다. 이들 업체에서 한복을 빌려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급증했다. 현대 세계의 보편적 도시경관 안에 조그맣게 남아 있는 한국의 전통공간 안에서 한복을 입고 다니는 것은 한국인들에게도 이색적인 경험이다. 사실 한복에서 받는 ‘이색적인 느낌’은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한복도 한옥도 한국인들이 세계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타 지역 문화요소들을 흡수하고 그것들과 어울릴 방도를 찾으면서 재창조한 것이다. 물론 이를 ‘가짜 전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에릭 홉스봄이 말한대로, 전통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적인 것’ 안에 이미 ‘세계적인 것’들이 들어와 있기에, 외국인들도 이들 물건에서 ‘인류적 보편성’을 발견한다. 

사진가 하만석은 한복을 입고 한국 궁궐을 관람하는 외국인들에게서 서로 다른 문화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융합하는 모습을 보았다. 한국인의 정체성이 담겼다고 믿어왔던 궁궐과 한복이 외국인의 몸에도 어울린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한국인들의 통념에 부합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았다. 예술은 본디 통념과 싸우며 시대와 불화(不和)하는 작업이다. 한국인의 몸에 어울리는 양복이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외국인의 몸에 어울리는 한복도 이상하지 않다. 그의 사진들은 각 민족의 ‘전통들’이 세계가 구체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창조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통념을 내리치는 벼락과도 같다. 그의 사진들을 통해 우리는 세계와 인류의 보편적 아름다움에 대한 감성을 새로 지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만석이 짓고 있는 사진세계 안에서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은 더 밝게 빛난다. 그가 자신의 사진세계를 더 높고 더 크게 지어올리기를 바란다.
질료를 나눠 가진 묘한 연대_김희경 기획자·미술심리학자


열려있는 눈동자를 통해 내적 조각들이 쏟아진다. 사진가 하만석은 플래시가 번쩍이는 순간 피사체의 암전에 닿고 튕겨 나오는 조각을 모으는 일에 몰두한다. 그 조각은 피사체의 일부이기도 하고, 작가가 질료로 삼는 정체성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은 ‘자아의식(Self-consciousness)’으로부터 출발해 ‘자아와 타아와의 공재(Mitsein)’를 인정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질료가 되어주는 관계성’으로 확장된다. 한 나라의 문화가 온전히 고유하다는 오해처럼 개인의 정체성이 순전한 자아로부터 파생됐다는 생각은 자칫 쉬울 수 있다. 대상관계심리학(Object Relation Psychology)의 마가렛 말러(Margeret Mahler)에 의하면 유아의 자아는 어머니와의 공생적 융합을 통해 점진적으로 출현하며 조직화되어 분리된다. 인지할 수 없는 팔과 다리를 허둥거리며 자신의 동작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신생아에게 그 존재의 범위와 무게감은 양육자로부터 부여된다. 자아가 온통 타자로 채워지는 것이다. 유아는 성장하며 자아의 더 많은 부분을 획득하고 세계와 맺는 관계 속에서 의식을 확장해 간다. 

예술적 탐구는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자아는 어떻게 의식될 수 있는가? 뷰파인더로 타자를 바라보는 행위와 자아의 인식이 어떻게 연관되는가? 어찌하여 타인에게서 자기의 것이라 여겨지는 조각들이 발견되는가? 실마리는 작가의 의사결정에 대한 질문에서 찾을 수 있다. 경복궁, 한복을 입고 지나가는 무수한 행렬 중 왜 하필 그들이 선택된 것인가? 사계절이 다 가는 동안 찾아 헤맸던 필연적인 피사체들은 어떤 연대로 묶여 있는가?

말러는 정신분석학의 주된 과제를 다루는 방법으로 초기 인간 단계인 ‘유아의 정신’을 ‘형태 없음(Formlessness)’으로 상정했다. 정신의 발달을 환경과 관계 맺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형태를 갖추어 나가는’ 단계를 척도 화했다. 생 후 몇 주 동안의 신생아는 자극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정상적 자폐 단계로 시작한다. 생 후 3, 4주가 되면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생단계를 거친다. 공생은 신체적으로 분리된 두 개인이 공통된 하나의 경계(Somatopsychic Omnipotent Fusion)를 갖는다는 심리 내적인 환상을 의미한다. 공생 단계는 주 양육자인 어머니로 한정되는데 그 사이에 어떤 구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단일체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 후 부화(Hatching)의 과정인 분리-개별화가 시작된다. 하나의 객체로 탐색된 어머니에게서 분화의 과정을 거치며 첫 이탈을 시도하는 것이다. 자신과 어머니의 구분을 가능하게 했던 타자 구별 능력은 이 세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대상과의 구별 또한 가능케 한다. 아동은 점차 더 넓은 세상을 탐색하며 ‘대상 항상성(Object Constancy)’을 완성한다. 세계와의 경험을 통해 자기 개념과 타자 개념이 안정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하인츠 하트만(Heinz Hartmann)에 의해 고안된 대상 항상성은 대상·정신적 표상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존재하며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자신과 타인의 표상에 대한 질적 측면으로 세상을 향한 태도나 관계에 영향을 끼친다. 관계를 통해 자아의 출현을 기술하는 대상관계 심리학자들의 설명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타인의 부재를 상상할 수 없게 한다. 

타자를 통해 자아를 찾는 하만석 작가의 작품 과정은 찰스 쿨리(Charles H. Cooley)의 거울자아이론(Looking Glass Self)을 확장한다. 타인의 반응을 거울삼아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는 맥락으로 거울을 바라보는 것처럼 타인을 바라보며, 타인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 기대되는 모습들을 흡수하여 자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작가는 존재 인식 순간에 대해 조명한다. 자아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되는 타자적 속성을 지닌 개념으로, 자아와 타아의 공재(Mitsein)를 주장하는 실존주의(Existentialism) 하이데거(M.Heidegger)의 말처럼, ‘존재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인식되는 유효한 경험의 기저’라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타인의 시선으로 재조립되는 자아의 인식,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맥락을 타고 재배치되는 자아의 확장. 이것이 그가 그토록 찾았던 결정적인 순간일지도 모른다. 관계 속을 살아가는 개인들은 그 연결을 통해 자신을 인식한다. 스스로 제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 제 마음속을 더듬기가 곤란하다. 자기를 구성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자아를 빛이 훤히 들어오는 양지바른 곳으로 꺼내와 펼쳐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그러하리라 짐작하는 모습을 달래며 구석구석 헤아려보기를 희망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닮은 타인을 만나면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관계 속에서의 타자들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주고, 닮은 부분을 더 빛나게 반사시켜주기 때문이다. 내면에서 찾기 어려운 자아의 조각들이 타인의 실체를 통하면 형체를 가지고 도드라지게 주장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들에게서 작가 자신의 일부를 봤다고 증언한다. 눈동자를 바라보면 그들도 그를 바라본다. 그 순간 그들의 내면, 그 암실 안에 있는 파편들이 쏟아져 나온다. 서로의 자아가 뒤엉켜 반응하며 순간적으로 토해내는 정수일 것이다. 그 무수한 조각들 중 작가가 인식할 수 있는 조각들은 오로지 작가 내면, 그의 암실 안에도 이미 있었던 것들이다. 감각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을 더듬는 대신, 실존하는 타자에 플래시를 터트리는 일은 어쩌면 타당했을지 모른다. 자아의 조각들을 찾는 과정에서 포착된 타자의 모습은 적어도 형체를 가진 채로 실재되기 때문이다.  

관계 속에서 타자들은 서로에게 질료가 되어준다. 자아는 인식되는 순간 구성되고 확장되기에 타자의 속성이 자아에 혼입 될 수밖에 없다.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은 각자의 질료를 한 조각씩 빌려주고 나눠 준다는 의미가 된다. 정체성을 찾는 일이란 나눠 받은 조각들로 쌓아나가는 모자이크(Mosaic)와 닮았다. 다양한 조각들을 합쳐 구성하는 모자이크는 전체가 드러날 때, 예정된 상상을 뛰어넘는 아우라를 보인다. 이 기법이 가진 재료에 대한 개방성은 ‘전체로서의 전혀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거나 이해되지 않은 조각들마저도 일부로 선택될 수 있고, 그 낯선 선택이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는 원석으로 기능한다. 조각들은 전체로 흡수되는 동시에 고유의 색도 간직하기에 하만석 작가의 작품 속 타자들은 조금도 비슷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러나 서로의 질료를 나눠 가진 묘한 연대의 모습으로 빛나고 있다. 그 조각들은 애초에 그들의 것이기도, 작가의 것이기도, 한국의 것이기도, 세계의 것이기도, 모두가 나눠 가진 것이기도 하다. 작품 속 그들의 눈을 바라보면 연결된 듯한 고밀도의 시선과 마주친다. 작은 떨림마저도 천둥소리처럼 감각되어질 만한 집중과 고요의 시간이다. 그가 몰두했던, 서로의 조각들을 쏟아내고 주워 담았던 그 실존의 순간들이 지금-여기서 다시 경험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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